2010년 4월 7일 수요일

한국에 스티브 잡스가 없는 이유

2010년 3월 30일 한국의 스티브 잡스를 서바이벌 게임으로 키워보겠다는 정부의 야심찬 계획이 발표됐다. 그 과감한 발상은 지식경제부에서 나왔고, 골자는 다음과 같다. 고교, 대학(원)생 중 우수한 학생 100명을 선발하고, 3단계 관문별 탈락제를 통해 최종 10명을 다시 선발해 그들에게 집중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과연 이렇게 해서 한국의 스티브 잡스가 만들어질까. 이 계획은 불발로 그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첫째, 스티브 잡스가 한국에서 태어나 지금 이 시기에 학생이라 해도 저 같은 서바이벌 게임에 참여하고 싶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잡스의 도전과 혁신으로 일관된 인생을 생각해볼 때, 그는 남이 정해 준 게임을 따라간 사람이 아니라, 늘 스스로 자신만의 게임을 창조하고 거기서 남이 흉내낼 수 없는 새로운 성공의 방정식을 만들어나간 사람이었다.

둘째, ‘실패’에 대한 정부 정책의 태도 때문이다. 혁신가로서 잡스의 인생은 실패가 실패의 뒤를 이었다. 최근 그의 대성공은 거의 막판 역전 드라마와 다름 없다. 그는 자기가 창업한 회사에서 쫓겨난 적까지 있는 인물이다. 90년대까지만 해도 그는 PC시대를 독점한 MS와 빌 게이츠에 철저히 밀려 있었다. MS의 윈도우가 선을 보이기 이전에 애플 맥킨토시에서 최초의 대중화 된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를 만들어 놓고도 ‘루저’ 중에 루저 취급을 받기까지 했다.

3단계 관문별 탈락제? 실패를 ‘성장의 과정’이 아닌 ‘자격의 부족’으로 보는 문화와 제도가 지속된다면 ‘탁월한 실패’를 통해 성공을 일궈낸 잡스 같은 인재를 탄생시키기는 어렵다.

이같이 기존 사고의 답습판과 다를 바 없는 소트프웨어 산업 육성책, ‘한국판 스티븐 잡스 만들기’가 정부 정책으로 발표될 수 있었던 까닭은, 정부가 IT를 대입용 수능 과목 정도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바이벌 게임으로는, IT 천재, 전략적 IT 산업은 육성되지 않는다. IT는 대입용 수능 과목이 아니라 ‘예술’이기 때문이다.

지난 IT의 역사를 생각해보자. IT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인물들, MS의 빌 게이츠, 애플의 스티브 잡스, 그리고 구글의 세르게이 브린, 레리 페이지 같은 인물들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 것은 그 시대의 IT를, IT의 그 시대를 정의하고 선도할 수 있는 ‘사고의 혁명’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MS의 빌 게이츠는 PC의 시대를 열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IT와 미디어를 융합시켰다. 구글의 세르게이 브린과 레리 페이지는 정보 민주화의 혁명을 일으켰다. 시애틀의 유력한 자산가인 아버지를 둔 빌 게이츠는 조금 예외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상대적으로’ 배고프고 가진 것은 머리와 열정, 이상 밖에 없는 처지에서 출발했다. 거대 자본력도 없는 이들이 단순한 성공이 아닌, 시대를 흔드는 혁신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사고’ 때문이다.

이것은 예술과 상통하는 바가 크다. 인상파 화가 피카소를 생각해보자. 그가 그림을 잘 그렸기 때문에 그렇게 인정을 받은 것인가? 아니다. 그는 ‘잘 그렸다’라는 것이 무엇인 지를 다시 정의했기 때문에 인정을 받은 것이다. 예술사에서, 위대한 예술가는 항상 그와 같았다. ‘잘 하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잘 하는 것이 무엇인 지를 다시 정의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앞서 보 듯 엇비슷한 맥락의 역사가 IT에서도 반복됐다.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 패러다임을 뒤집는 ‘예술적 사고’가 IT를 이끌어 왔다. IT는 예술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한국에도 스티브 잡스가 나올 수 있을 것인가? 일단 ‘만든다’는 생각을 버리자. 인간의 창조성이란 공장에서 찍어내는 상품이 아니다. 언어학을 배운 사람들은 상식적으로 알고 있다. MIT의 저명한 언어학자이자, 현대 언어학을 새로 쓴, 촘스키는 말했다. ‘언어는 본능’이라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언어를 사용할 수 있고, 그 것이 다시 인간을 정의한다고. 그리고 그가 말한 언어의 특성이란 다른 종의 동물이 따라잡거나, 기계가 결코 모방할 수 없는 ‘무한한 창조성’이다. 인간은 누구나 그 창조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따라서 문제는 창조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창조성을 죽이는 제도와 문화다. MIT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레스터 써로우(Lester Thurow)가 2001년 3월 28일 대만에서 “지식 기반 경제와 글로벌 경쟁: 아시아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했다. 강의의 말미에서 써로우는 급성장하는 아시아가 지식 기반 경제가 주도하는 글로벌 경제에서 주도권을 발휘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로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교육을 지적했다. 여기서 다시 교육을, ‘인재를 선발하고 육성하는 시스템’으로 좀 더 폭넓게 재정의해보면, 오늘날 우리는 써로우의 경고와 조언에서 한 치도 나아가지 못한 우리의 소프트웨어 산업 발전 정책을 보고 있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분명하다. ‘더 쉽게, 더 빨리, 그리고 더 많이 실패’할 수 있는 제도와 문화를 육성하는 것이다. 서바이벌 게임의 정반대의 길을 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다. 그는 표준화된 공장의 제조 방식에 의해서 나올 수 없는 인물이다. 대신, 고유한 창조성과 도전 정신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플랫폼을 건설해 준다면, 그들이 알아서 그 날개를 펼 것이다.

그 ‘희망’의 근거는 있다. 우리에게는 IT가 ‘외국어’가 아닌 ‘모국어’인 세대들이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한 언어를, 성장한 이후 외국어로 배운 사람들에게는 그 언어를 창조적으로 사용한다는 것이 엄청난 도전이겠지만, 그 언어를 모국어로 배운 사람들에게는 그저 ‘본능’이다. 그리고 우리는 IT를 본능으로 사용할 수 있는, 예술로 활용할 수 있는 수 백만의 인력, 자라나는 넷 세대(Net generation)을 가지고 있다.

작년 수도권 버스 관련 정보 애플리케션인 ‘서울버스’를  만들어 내 아이폰 앱스에서 크게 인기를 끌었던 고교생 개발자 유주완 같은 인재들이 그 수 백만 중 일부일 수 있다. 이미 다 죽은 것 같은 고목이라 할 지라도, 단 한 송이의 꽃이라도 핀다면, 뿌리가 살아있는 것이 아닌가.

한국 IT에 희망은 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아직 ‘미래’는 남아있다. 남은 길은 그 가능성의 씨앗들이, 실제 열매로  맺어질 수 있는, 더 쉽게, 더 빨리, 더 많이 실패할 수 있는 제도적, 문화적 기반을 조성해주는 것이다. 디지털에서 태어나고 세계화가 되어 가는 시대에 자라난 이 세대들에게 인간과 기계, 사회와 기술이 하나로 통합되는 새로운 세계인 소셜 웹(social web), 이 플랫폼에 대한 열정과 비전을 심어주고 그들이 실험과 도전을 거듭하며, 탁월한 실패를 통해 혁신과 창조의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장을 세워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난 30일에 발표된 전시용 이벤트, 서바이벌 게임을 넘어선 것이다. 그 것은 창조와 혁신을 위한 생태계(ecosystem), 그리고 소셜 아키텍쳐(social architecture)를 준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의 끝이라면, 한국의 스티븐 잡스가 아니라 그 이상을 꿈꿔보는 것도, 예술보다 더 예술적인 IT, 그리고 그 IT가 만들어 나가는 새로운 도전과 혁신의 사회적 인프라를, 미래를 꿈꿔보는 것도 꿈만은 아닐 것이다.


댓글 1개:

  1. 단 한송이의 꽃이라도 핀다면 뿌리가 살아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말...



    많은것을 생각해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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