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3일 수요일

The Experience Imperative: A manifesto for industrial designers

제품디자이너라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정말 잘 얘기해주고 있다.

오랜만에 보는 좋은 글...





글. 켄 프라이(Ken Fry)


디자인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거의 줄곧 인터랙션 디자인 작업을 해왔지만, 내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세계 양자에 다리를 걸치고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산업 디자인 분야에서의 경험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난 몇 년간, 산업 디자인 업계가 쇠락의 길로 빠져드는 가운데, 반대로 인터랙션 디자인은 번영을 구가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러한 시점에서 나는 산업 디자인 작업에 대한 도전이 필요하다고 본다. 산업 디자인 분야의 회복을 위해 새로운 행동에 나설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산업 디자인의 핵심은 욕망의 오브제를 창조하는 데 있었다. 거의 한 세기 동안 이러한 인식은 계속해서 강화되어 왔는데, 그것은 제품이 지닌 표면적인 아름다움만을 찬미했을 뿐 그것을 존재케 하는 인간적 맥락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디자이너들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라들이 제품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너무나 쉽게 무시하곤 한다. 또한 자신이 창조해낸 인공적 산물의 문화적 관련성이나, 자신의 디자인이 초래하는 사회적/환경적 영향 역시 무시하긴 마찬가지다. 이러한 병폐가 디자인 교육을 오염시키고 고객들을 현혹시키도록 방치해온 것이다. 문제가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는 지금, 산업 디자인에 대한 기존의 정의에 몇 마디 새로 덧붙이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산업 디자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

변화를 위한 자극이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빈 샴푸통이 매립지행 쓰레기 신세로 던져진 첫 순간, 관절염에 시달리는 손으로 냉장고 문을 열지 못하는 순간, 혹은 카메라가 찰나의 정서를 필름 위에 포착해내지 못한 첫 순간, 산업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역할을 고찰할 기회란 이전부터 존재해왔다. 제품의 사용자들에게 가장 의미 있는 것은 제품에 깃든 폭넓은 경험이다.

반가운 소식은, 이미 많은 산업 디자이너들이 변화의 필요성, 변화의 방향들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산업 디자인 분야의 변화가 요구되는 상황이긴 하지만, 산업 디자이너란 이러한 새로운 시대의 요청에 응답할 수 있는 존재다. 산업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직업을 재정의할 수 있는 시간이 도래한 것이다. 이를 위한 열 가지 지침을 소개하고자 한다.

1. 아름다운 물건이 아니라 아름다운 경험을 디자인하라 
겉보기엔 아름답지만, 문화적으로 불쾌하고 사회적으로 빈약하며 환경적으로 무책임하고 쓸모 없고 엉망인 물건들이 산재해 있다. 자신이 만드는 인공물의 모든 맥락을 곰곰이 생각해 보라. 그 제품은 어떻게 사용되는가? 어디서 누가 사용하는가? 사용자의 실질적인 욕구를 어떻게 충족시켜주는가? 또한 물건 이면의 의미 역시 고찰해야 한다. 그 제품이 미칠 정서적, 문화적, 사회적, 환경적 영향은 무엇인가? 이렇듯 한층 더 넓은 맥락과 의미를 고민하지 않는다면, 물건은 하찮게 되고 말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맥락과 의미가 경험을 규정한다. 특정 물건을 넘어 생각하고, 사용의 모든 맥락을 고려하라. 이러한 맥락과 경험을 배우는 데 도움이 될만한 디자인 공정을 적용하라. 또한 물건에 기반한 결과 대신, 경험 중심의 해법을 지향하는 작업을 실행하라.

2. ‘무엇’이라고 묻지 말고, ‘왜’라고 질문하라 
디자이너들은 종종 서류 상의 엄격한 가이드라인에 충실한 물건을 디자인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산업 디자이너로서 요청 받은 작업의 내용이 ‘무엇’인지만을 고려한다면, 두 눈을 감고 디자인을 대하는 것과 같다. 그렇게 탄생한 물건 역시, 사람들에게 유의미한 요소들이 결여된 것에 불과할 것이다. 무엇을 디자인해야 할지 적어 놓은 요청서를 받게 된다면, 다음부터는 ‘왜’라고 질문해 보자. 왜 누군가에게 이 제품을 사용하라고 권유해야 하는가? 특정한 시장 상황을 위해 이런 제품을 만드는 것이 왜 꼭 필요한가? 특정 기술을 왜 수용해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 당신이 얻은 답변들은, 물리적인 제품의 범위를 넘어 경험의 영역에 들어서는 새로운 가능성들을 열어줄 것이다. ‘왜’라고 질문하라. 그 순간, 경험이 살아 있는 제품의 세계에 닿게 될 것이다.

3. 경험으로 시작해 경험으로 마감하라 
종이에 스케치부터 하기 전에, 인간의 경험을 이해하고 공감하자. 현대의 테크놀로지에 의지하지 않는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자. 새로운 디자인 솔루션을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까? 고객의 집과 일터를 찾아가서, 그들의 동기를 관찰하고 파악하며, 그들의 말과 행동을 기록하라. 그런 다음 그 경험을 글로 적어 보자. 관찰한 경험을 글로 표현해 하나의 서사로 발전시키고, 기능성과 행동 부분에 주목하자. 마지막으로, 당신이 만난 이들을 흡족하게 해줄 경험을 만들어보자. 몇 가지 솔루션의 견본을 만들고, 사람들이 그 디자인을 어떻게 경험하는지 살피며, 그들의 관점을 파악한 뒤, 의미 있는 경험을 가능케 할 새로운 디자인 솔루션을 개발하라.

4. 재능은 실패하고 지혜는 성공할지니, 현명함을 지녀라 
디트리히 되르너(Dietrich Dorner)는 그의 책 <실패의 논리 The Logic of Failure>에서 “천재는 날 때부터 천재인 반면, 현자는 경험을 통해 지혜를 얻는다. 최적의 방법으로 문제를 다룰 능력은 천부적 재능보다는 지혜의 특징이다.”라고 제시하였다. 사람들의 경험을 이해하지 못한 채 좋은 디자인 솔루션을 견인하기란 불가능하다. 훌륭한 디자인은 천부적 재능이 아닌 지혜의 산물이다. 그러니 사용자들의 경험에 몰두하라. 그들이 하는 대로 하고, 그들이 사는 대로 살아라. 그들의 욕구와 고통을 예민하게 감지하라. 그리고 현명함을 지녀라.

5. 단순성을 유지하라
단순하면서도 사용자에게 풍성하고 의미 있는 물건이나 경험을 디자인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우선, 제품의 용처와 사용 방식을 이해하여, 제품의 가치 및 맥락이 지닌 복잡성을 파악하는 일부터 시작하자. 그런 다음 혼란을 줄이고 불필요한 부분을 잘라내며 일을 진척시킴으로써 디자인을 단순화하라. 연구와 고찰, 훈련 등을 통해 필요한 바를 숙지하면서, 동료들과 함께 작업하자. “지식은 모든 것 더 단순히 만들어준다”는 존 마에다의 말을 실행에 옮겨라.

6. 디자인 사고(design thinking)에서 역동적 사고로
물리적 차원에서의 제품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동결되는 것이 아니다. 즉 디자인 공정이란 디자인 솔루션이 디자이너의 손을 떠나는 순간이나 제품이 공장에서 출고되는 시점에 종료되지 않는다. 제품은 사용을 통해 변화하고 적응하는 살아 있는 인공물이다. 고객이 제품을 구입하는 순간, 그 제품을 새로운 특성을 얻게 된다. 이러한 작용은 외면적인 방식으로 나타나기도 하고(“나는 새로 산 물병에 내 이름을 써넣었다”), 수동적인 방식으로 나타나기도 하며(“바닥에 수십 번을 떨어뜨린 바람에 내 물병은 찌그러져 있다”), 때로는 좀 더 의미 있는 방식으로 일어나기도 한다(“생활 습관을 바꾼 나는 이제 내가 마실 물병을 온종일 갖고 다닌다”). 우리가 해야 할 도전은 물건을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과 함께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적응하는 물건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디자인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이 요구된다. 시간의 흐름 속에 쓰이는 디자인을 스토리보드로 스케치하라. 그 제품의 작용을 스케치하고, 제품이 사용자의 맥락 및 환경에 반응하는 방식을 스케치하라. 제품의 참여와 소통의 방식을 디자인하라.

7. 반복을 통해 과정을 이끌어라: 더 빨리 일하고, 더 자주 변화하라
펜 끝에서 단번에 올바른 디자인이 나오리라 기대해선 안 된다. 좋은 제품 디자인이 거듭되는 반복을 요하는 것이라면, 좋은 경험의 디자인이란 그보다 더 많은 반복을 필요로 한다. 경험의 디자인이란 복잡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디자인하는 사물은 사용자의 동기와 행동의 시스템 안에 존재하며, 맥락상의 제약과 기회의 요소 속에 존재한다. 이러한 복잡성을 해결하려면, 보다 신속하게 움직이고 보다 빈번하게 변화해야 한다. 스케치의 형태로 디자인의 대체적인 개요를 신속히 표현하고 이를 사람들에게 들이밀어라. 그런 다음, 그것을 수정하라. 다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다시 수정하라. 작업을 진행하며 디자인의 목표 지점이 바뀌는 일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

8. 작업을 즐겨라
훌륭한 제품이란 즐거운 경험을 주기에, 디자인하는 과정 역시 즐거운 일이다. 기쁨과 열중, 재미와 보람의 순간들이 어우러지는 것. 이는 디자인 솔루션뿐 아니라, 디자인이라는 행위와 실행 작업 그 자체이기도 하다. 피곤한 공정에 얽매이는 부담을 벗어 던지고, 창작의 과정을 즐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창조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디자인 작업을 즐거운 게임으로 전환시켜, 동료들과 함께 푹 빠져들어 보자.

9. 다른 길로 우회하지 말고, 디자인의 목표 지점에 작업 과정을 맞추어라
산업 디자인의 공정은 지난 백 년간 진화하고 성숙해 왔다. 물리적 의미의 물건에만 주목하는 산업 디자이너는 기존의 정확하고 검증된 방법에 의존하려 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람들은 제품에 대해 보다 많은 것을 요구한다. 이제 우리는 디자인 공정을 확 뒤집어 좀 더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낡은 습관을 고수하면서 사용자의 경험에 대해 타협하는 대신, 디자인의 과제에 작업 과정을 맞추자.

10. 나만의 역량이 아닌 경험을 수호하라
낯설거나 모호한 디자인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자기만의 역량을 지키려고 하는 것이 우리의 경향이다. 이러한 충동에 저항하면서 새로운 역량을 찾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즉 나와는 다른 사람들과 상의를 하면서, 자신이 만들어내는 경험 이면의 의미를 발견해야 한다. 생활 속에 살아 숨쉬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데 전문가인 민속지학자와 얘기를 나누어라. 제품과 사람들의 행동 양상을 마음 속에 그릴 수 있는 인터랙션 디자이너와 함께 작업하라. 그리고 역량이라는 사슬에서 스스로를 해방시켰다면, 자신을 이렇게 불러 보는 것은 어떨까. 경험의 디자이너(experience designer)라고 말이다.



켄 프라이 아티팩트(Artefact)의 디자인 디렉터. 디자인 컨설팅사인 아티팩트는 첨단 가전제품, 커뮤니케이션, 컴퓨터 소프트웨어 분야 클라이언트들과의 작업을 통해, 고객의 요구를 연구하고 혁신적인 소프트웨어와 테크놀로지 제품을 디자인해왔다. 켄 프라이는 아티팩트에서 활동하기 이전, 약 12년간 마이크로소프트 사에서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부문을 넘나들며 사용자 경험 관련 그룹을 이끈 바 있다. 또한 마이크로소프트 내의 다른 부서들이 대중의 사랑을 받는 제품 및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도록, 디자인의 규정 및 표준 연구 작업에도 힘을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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