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박현영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박웅현 ECD는 광고계에 발을 들여놓은 지 올해로 24년째다. 1987년 제일기획으로 입사해 2004년 외국계 광고 대행사인 TBWA코리아로 옮겼다. 카피라이터로 출발해 지금은 광고 제작 전반을 ‘오케스트레이션(통합·조직·조정)’하는 역할이다.
●카피를 직접 쓰기도 하나요.
“직접 쓰기도 하고 후배가 쓴 게 좋으면 그걸 쓰기도 해요. 회의를 하다 보면 누가 썼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아요. 단어 몇 개가 툭툭 던져지면 그 위에 얹고 더해서 완성되는 거죠. 아이디어는 물리적으로 벽돌이 결합해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화학작용이거든요.”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나요.
“메모하는 습관이 있어요. 공책에도 쓰고, 휴대전화 메모장에도 적고, 컴퓨터에 파일로도 만들어 놔요. 책에서 읽은 구절, 길에서 본 것, 여행하면서 느낀 걸 적어요. 시이불견 청이불문(視而不見 聽而不聞), 보기는 하되 보지 못하고, 듣기는 하되 듣지 못한다는 말처럼, 창의적인 생각은 흘려 보지 않고 깊이 보는 데서 나옵니다. 들여다보는 사람은 아이디어를 찾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흘려 보내는 거예요. 메모는 그걸 기억하게 도와주는 장치고요.”
●‘시청(視聽)’이 아닌 ‘견문(見聞)’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헬렌 켈러는 저서 『사흘만 볼 수 있다면(원제:Three Days to See)』에서 자기가 대학 총장이라면 정규 과목으로 ‘눈을 사용하는 방법(How to use your eyes)’이란 강의를 개설하겠다고 했어요. 숲 속에 다녀온 사람들에게 ‘뭘 보고 왔느냐’고 물으면 ‘별거 없다(Nothing special)’라고 한다는 거예요. 앞을 보지 못하는 입장에선 그런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는 거죠. 떡갈나무 기둥을 만질 때와 자작나무 기둥을 만질 때 느낌이 완전히 다르고, 나뭇잎은 오묘하게 균형이 잡혀 있고, 폭신하게 밟히는 낙엽과 새, 바람, 물 소리까지, 모든 게 엄청난 세계인데 왜 ‘낫싱 스페셜’이냐는 거죠. 영국의 저술가 존 러스킨도 ‘창의적이 되고 싶으면 언어로 그림을 그리라’고 했어요.”
●창의성은 광고 이외의 분야에서도 필요하죠.
“직업적으로 필요하지 않더라도 창의성을 키우는 건 가치 있는 일이에요. 인생이 풍요해지니까.”
그는 스스로 ‘들여다보기’ 훈련을 했다.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자신의 촉수를 한껏 발달시켰다. “요즘은 콩나물 씹을 때 탁 터지는 느낌 때문에 행복해요. 날이 흐려서 색깔이 하나로 정리된 날, 하늘을 올려다보면 액자가 따로 없어요. 나이 드는 게 좋은 게, 오감이 예민해지거든요. 하나하나가 감상 포인트가 되고, 점점 보는 게 많아집니다.”
●광고 제작 전반을 지휘하는데, 리더십의 핵심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소통요. 리더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구성원들이 ‘같은 페이지’를 펼치게 만드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에요. 한국적 정서는 ‘저놈 말만 잘해’가 욕이잖아요. 소통을 굉장히 무시하는 문화죠. 동질 집단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내 진심은 전달될 것이라고 믿는 거죠. 옛날엔 그렇게 해도 공유가 됐는데, 현대사회는 달라요.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정확한 커뮤니케이션이 필수예요. 소통 부재에서 오는 손실과 피해가 너무 크거든요. ‘생각의 누수’가 많죠.”
●리더가 해야 할 역할은요.
“창의력은 발상보다 더 중요한 게 과정 관리예요. ‘윗것’이 될수록 과정 관리를 잘해야 해요. ‘아랫분’들은 발상을 해야 하고요. 리더는 스스로 발상하려고 노력하지 말고, 좋은 아이디어 나와 있는 걸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를 연구해야죠.”
이어 리더의 ‘낚시론’을 펼쳤다.
“7명쯤 모여 회의를 하면 도합 150년 차 정도 돼요. 우리가 던지는 말이 그렇게 우습지 않다는 얘기죠. 회의실에 흐르는 단어 중에서 뭔가를 건져내는 게 제 역할이에요. 그 흐르는 말 속 어딘가에 아이디어가 있어요. 예민한 낚시꾼은 그걸 낚아채요. 그리고 키워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아이디어는 없어요. ‘괜찮은 것 같은데’에서 시작해서 인큐베이팅되는 거죠.”
1.대림산업 e편한세상 ‘진심이 짓는다’(2009년) 2.SK에너지 ‘생각이 에너지다’ 캠페인 ‘지구 반대편을 팠다’(2007년) 3.SK텔레콤 ‘생활의 중심’ 캠페인 ‘현대생활백서’ 시리즈(2005년) 4.KTF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2002년) 5.n016 ‘잘 자! 내 꿈 꿔’(1999년) 6.제일모직 빈폴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1993년)
●박웅현의 광고는 인문학적 창의성이 돋보인다는 평을 듣지요.“광고는 마케팅 도구이고, 기업의 문제 해결 수단이지만 결국 종착점은 불특정 다수의 관심 없는 사람들이에요. 전하려는 메시지가 그 사람들 마음속에 앉아야 하거든요. 그러니 결국 사람을 알아야 해요. 그게 인문학이지요.”
●광고 철학은 뭔가요.
“없어요. 광고에 제 철학이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광고는 기업의 돈을 가지고 기업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지, 내 스타일의 생각을 사회에 던지려는 게 아닙니다. 그렇게 하면 나쁜 사람이지요. 그건 내 돈으로 해야지. (웃음) 문제 해결을 하려면 그때그때 처방이 달라야 해요. 그래서 내 스타일이 없는 게 내 목표예요. ‘그 광고 박웅현이 관여한지 몰랐다’는 얘기를 들을 때가 제일 기분 좋아요.”
●다른 사람도 재미있을지 어떻게 확신하나요.
“저 자신을 믿어요. 그리고 내 생각을 객관화시키려고 노력해요.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유이립(柔而立), 부드러우면서 주관은 뚜렷하자는 신조예요. 잘 모르는 분야는 다른 사람들 얘기를 자꾸 듣고 흡수하려고 노력해요. 물론 어렵지요. 어디까지 내 주관으로 주장해야 할지, 어디까지 양보해야 하는 것인지 분간하는 것이. 여기에서 자세를 잡는 게 곧 내 경쟁력이 되겠지요.”
●광고에 개인적 경험은 얼마나 녹여내나요.
“많이 녹아나는 편이에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미국 대학원 수업에서 경험한 거예요. 첫 수업 시간에 60대 할아버지가 책을 들고 들어오는데 학생이었어요. IT(정보기술) 관련 과목이었는데, 30대 초반의 중국계 교수가 가르쳤어요.”
지금은 광고 분야에서 일가를 이뤘지만, 광고와의 인연은 우연히 맺게 됐다.
●광고 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먹고살려고 했어요.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는데, 언론사 시험에 다 떨어지고 광고회사에 붙었어요. 광고에 대한 사명감, 이런 거 없이 시작했어요. 학보사 편집장을 지낸 전형적인 386세대였어요. 사변적이고, 정치적이고, 논쟁적이고, 산문적인 사람요. 그런데 광고회사에 들어와 보니 그런 걸 혐오하는 거예요. 감각적이고, 운문적이고, 말초적이고, 순간적이어야 되는데, 그 갭이 안 채워지더군요.”
●어떻게 극복했나요.
“안 되겠다 싶어 그만두려고 했어요. 취업할 나이는 이미 지났으니, 르포 작가를 하려고 언론사 들어간 친구들 만나고 다녔어요. 입사 후 3년을 그렇게 보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깨달았어요. 광고도 본질적으로는 꿰뚫어 보는 힘, 분석력과 논리력이 필요한 일이라는 걸. 그제야 재미가 들기 시작했어요.”
●광고주 앞에서 프레젠테이션, 일명 PT 많이 하시죠? PT 잘하는 비결이 있나요.
“‘진심’요. 비 유어셀프(Be yourself), 가장 자기스럽게 하는 게 방법이에요. 보통 PT의 기술이라며 손을 어디에 둬라, 말이 너무 빠르다 이런 훈련을 받죠. 그런데 본질은 그게 아니에요. 잘 보일 생각 말고 내 마음을 전달하려고 하면 돼요. 진심이 있다면 빠른 말투도 열의로 보일 수 있어요. 자기 진정성을 가져야 해요. 내가 말하는 게 가치가 있다는 걸 내가 믿어야 해요. 사기꾼이 아닌 이상 그게 억지로 안 돼요. 내가 말하는 게 가치 있을 만큼 준비를 해야 하는 거죠.”
광고 PT의 세계는 냉혹하다. 보통 한 광고를 따기 위해 4개 이상의 광고회사가 경쟁을 한다. 그는 “제법 이기는 편인데도 승률이 4할, 5할쯤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스트레스는 어떻게 다스리나요.
“그냥 견뎌요. 나는 그걸 동물에게서 배워요. 눈이 온다고, 덥다고 어찌하지 못하잖아요. 먹이를 찾아 헤매다가 다치면 동굴 속에 들어가잖아요. 힘들 때 있고, 처질 때 있고, 일 안 풀릴 때 있는데 그게 삶인걸요. 미술 평론가 손철주는 ‘말짱한 영혼은 가짜다’라고 했어요. 살다 보면 영혼은 다 다치게 돼 있어요.”
●미래의 꿈은.
“없어요. 가장 잘 사는 길은 현재에 집중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건 톨스토이인데, 가장 중요한 사람이 누구이고 중요한 일이 뭐냐는 질문에 ‘나한테 가장 중요한 사람은 당신이고, 가장 중요한 일은 이 일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박웅현 ECD가 세 장의 명함을 내밀었다. 하나를 고르란다. 가장 호기심을 자극하는 ‘익스트림리 크레이지 도그(Extremely Crazy Dog·완전히 미친 개)’라고 적힌 걸 택했다. 그의 영문 직함(Executive Creative Director)의 약자인 ECD를 본떠 만든 ‘조크’다. 임원으로 승진하기 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시절, 약자인 CD를 본떠 외국인 친구들에게 ‘크레이지 도그’라고 자신을 소개한 게 계기였다. 승진하는 바람에 ‘완전히’가 붙었다.
벽돌이 그려진 그림은 광고주에게 건네는 명함이다. 자신을 ‘브랜드 건축가’로 소개하고 싶어서다. “함께 브랜드를 건축해 나가자”는 제안이기도 하다. ‘서프라이즈 미’라고 쓴 명함은 외부 스태프에게 주기 위해 만들었다. 편집실·녹음실·음악감독 등 함께 일하는 제작사 감독들에게 건넨다. 세상이 깜짝 놀랄 만한 작품을 만들자는 자극이자 다짐이다.
j칵테일 >> ‘완전히 미친 개’
박웅현 ECD가 세 장의 명함을 내밀었다. 하나를 고르란다. 가장 호기심을 자극하는 ‘익스트림리 크레이지 도그(Extremely Crazy Dog·완전히 미친 개)’라고 적힌 걸 택했다. 그의 영문 직함(Executive Creative Director)의 약자인 ECD를 본떠 만든 ‘조크’다. 임원으로 승진하기 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시절, 약자인 CD를 본떠 외국인 친구들에게 ‘크레이지 도그’라고 자신을 소개한 게 계기였다. 승진하는 바람에 ‘완전히’가 붙었다.
벽돌이 그려진 그림은 광고주에게 건네는 명함이다. 자신을 ‘브랜드 건축가’로 소개하고 싶어서다. “함께 브랜드를 건축해 나가자”는 제안이기도 하다. ‘서프라이즈 미’라고 쓴 명함은 외부 스태프에게 주기 위해 만들었다. 편집실·녹음실·음악감독 등 함께 일하는 제작사 감독들에게 건넨다. 세상이 깜짝 놀랄 만한 작품을 만들자는 자극이자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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